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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히터방어 파산타제나 (Vasantasena)

브레히트 연극과 문학에 수용된 명작 독어원서 20

서시 – 포이히터방어 『파산타제나』 - 브레히트가 초기 희곡에 수용·이전한 『파산타제나』의 서사적 형식 포이히터방어 인도극 『파산타제나』 번안해 독일무대에서 성공했지. 1916년 출간했으며 같은 해 만하임 국립극장에서 초연했다네 뮌헨 캄머스필에서는1918년 2월 8일 처음 무대에 올랐다네 뮌헨 모든 연극들 챙겨보던 브레히트 『파산타제나』도 관람했지. 작가가 되고자 했던 브레히트 무작정 포이히터방어 찾아갔지. 인정받고자 그때 들고 간 원고 바로 『한밤중의 북소리』였다네. 이 만남을 통해 둘은 사제지간, 비평가, 공동작업자가 되었다네 초기 희곡에 수용한 서사적 양식들, 모두 포이히터방어 영향이었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산스크리트 번안극 『파산타제나』였던 게야. 브레히트 유고도서..
서시 – 포이히터방어 『파산타제나』
- 브레히트가 초기 희곡에 수용·이전한 『파산타제나』의 서사적 형식

포이히터방어 인도극 『파산타제나』 번안해 독일무대에서 성공했지.
1916년 출간했으며 같은 해 만하임 국립극장에서 초연했다네
뮌헨 캄머스필에서는1918년 2월 8일 처음 무대에 올랐다네
뮌헨 모든 연극들 챙겨보던 브레히트 『파산타제나』도 관람했지.

작가가 되고자 했던 브레히트 무작정 포이히터방어 찾아갔지.
인정받고자 그때 들고 간 원고 바로 『한밤중의 북소리』였다네.
이 만남을 통해 둘은 사제지간, 비평가, 공동작업자가 되었다네
초기 희곡에 수용한 서사적 양식들, 모두 포이히터방어 영향이었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산스크리트 번안극 『파산타제나』였던 게야.
브레히트 유고도서관에 남기고 있다: 1924년판 『파산타제나』를!
수백번 무대공연 뒤, 1916년판 수정하고 보완했던 본인 게야.

하나 그가 찾는데 오래 걸렸지: 『샤쿤탈라』에서 서사극 형식을.
망명지에서 『둥근머리와 뾰쪽머리』 개작하며 마침내 찾게 된 게야!
하여 주경민 편집하네: 동시에 『파산타제나』 1916/1924년 본을.

2025년 2월 20일, 봄을 재촉하며 독일 검은숲 언저리에서
포이히터방어 (Lion Feuchtwager, 1884-1958)는 젊은 브레히트 (Bertolt Brecht, 1898-1956)를 작가로 발굴한 1920년대 당시 뮌헨 문학과 연극계를 이끌던 작가이다. 희곡 “스파르타쿠스“를 들고 찾아온 브레히트의 재능을 보고 클라이트상 수상을 통해 작가로 발굴한 선배 작가이자, 함께 동등하게 네 작품을 공동 작업했던 문우이자 브레히트가 유일하게 존칭을 붙였던 스승이다.
그리스극과 인도 산스크리트극을 미리 연구하고 번안했던 포이히터방어의 해박한 연극 지식이 브레히트 현대 서사극 발전에 많은 도움과 영향력을 끼쳤다. 더나아가 브레히트가 산스크리트극 작가인 칼리다사와 슈드라카의 작품 세계로 이끄는 안내자가 되었고, 브레히트가 망명시절에 칼리다사 “샤쿤탈라“를 통해 서사극의 뿌리를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브레히트와 이런 공동 작업 이후, 포이히터방어는 다시 희곡을 쓰지 않았으며 대신 소설가로 세계 문학사에 우뚝 서게 되었다.

편저자 주경민은 경주시 출생, 대구고와 성균관대학 독문학과 졸업 후 독일 괴팅겐대학과 칼스루에대학에서 독문학/사회학 전공, 브레히트 100주기 위해 1988년부터 브레히트 신·구 전집 전산화 작업, “마르가레테 스테핀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 1998년 “브레히트 컴퓨터 인덱스 2000“ (BCI2000) 완성, “브레히트와 동양 연극“ 관련 다수 논문 발표, (주) 에바다 사장 역임, 칼스루에 시의회 외국인 자문의원, 사이버 묵상 편지 “그리스도의 편지“ 집필-운영자, “필라복음신문“ 편집인, 시인, 번역가로 활동. 현재, 인문과학 분야 디지털콘텐츠사 “BRECHTCODE“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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