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레히트가
중국 한시를 일찌감치 접한 흔적은 1915년에 출간된 클라분트의 전쟁 한시 번안집인 『둔한 북소리와 취한
징소리 (Dumpfe Trommel und berauschtes Gong)』 (BNB-Nr. 679)에서 드러난다. 이 책은 브레히트 유고 도서관에 남아 있는데, 뮌헨 대학시절 친구인 뮌스트러는 이에 대해 분명하게
회고있다. 이 시집은 『시경』에 수록된 “병사의 탄식
(Klage der Garde)“에서부터 두보와 이태백의 시들 중에 변방 전쟁터에서의 애환을 그리는 시들을 번안한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브레히트의 중국 한시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컸었는지는 브레히트가 유고도서관에
남긴 『시경 (詩經, Schi-King)』
(BNB-Nr. 1090)을 통해서도 충분히 입증된다. 『시경 (詩經)』은 원래 311편의 고대 민요를 '풍(風)', '아(雅)', '송(頌)'의 3부로 나누어서 편집하였다. 그중 6편은 제명(題名)만 있을 뿐 어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사가 있는 것은 30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풍(國風)'은 각국의 여러 지역에서 수집된 160개의 민요를 모은 것이며, '아(雅)'는 연석(宴席) 노래들로, 다시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로 구분했다. 소아 74편과 대아 31편은 조정에서 불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송(頌)' 40편은 왕조·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의 노래로 추정된다. 어느 것이든 고대 시대의 이름없는 민중이나 지식인들 노래이다.
그런데 19세기에 두 시인이 『시경 (詩經)』에 관심을 보였지만,
상이하게 접근했다. 1880년 폰 슈트라우스 (Von Strauß)는 원래 공자의 구분에 따라 '풍(風, Ladesübliches)'은 주남 (周南, Tscheu Nan)에서 빈풍 (豳風,
Pin)에 이르기까지 총 15권 160편으로
편집했으며, '아(雅)'도 소아 (小雅, Kleine Feslieder) 74편과 대아 (大雅,
Große Festlieder) 31편으로 구분해 독역했다. 그리고 '송(頌, Feiergesänge)' 40편을 주송 (周頌,
Feiergesänge von Tscheu), 노송 (魯頌, Feiergesänge von Lü), 상송 (商頌, Feiergesänge von Schang)으로 구분하여 독역했다.
폰 슈트라우스가 원전에 가깝게 독역한
것과 달리, 브레히트가 소장하고 있는 뤽케르트의
번안 『시경 (詩經)』 '풍(風)', '아(雅)', '송(頌)'으로 분류했던 원전과 달리, 공자가 편집한 『시경
(詩經)』의 모티브와 시들에 따라 번안했으며,
아무런 구분없이 각 편을 독역하여 순서대로 단순하게 편집하였으므로 305수 보다는 많은 433수의
번안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이 1833년에 출간되었지만,
뤽케르트의 방대한 작업을 몰 (Jul. Mohl)이 1830년에 편집한 것을 감안할 때, 1820년대 이미 작업했음을 알 수 있다.
브레히트가 폰 슈트라우스의 번역 『시경 (詩經)』보다 뤽케르트의 번안 『시경 (詩經)』에 관심을 가진 것은, 후일 망명시절에
중국 한시를 번안했던 자신의 관심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Hans Otto Münsterer: 같은 책, 100쪽
Friedrich Rückert: Schi-king. Chinesiisches Liederbuch. Gesammelt von
Confucius. Altona bei J. F. Hammerrich 1833. (BNB-Nr. 1090)
Victor von Strauß: 詩經 Schi-kng. Das
kanonische Liederbuch der Chinesen. Heidelberg 1880.